카테고리 글 목록: 스페인어/프랑스어 무.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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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볼거리 팜플로나와 포도주

소몰이 축제가 유명한 팜플로나

나바라 지방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로 ‘소몰이 축제’가 유명한 곳입니다. 소몰이 축제 (encierro라고 합니다)는 7월 6일부터 시작되는 산 페르민(San Fermin)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이는 투우 경기에 사용할 소들을 투우장으로 옮길 때 운반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시 인근의 소 우리에서 투우둘을 풀어서 투우장까지 몰고 가는 과정에서 생긴 축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산 페르민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8시 정각에 산토 도밍고 광장에서 산토 도밍고가와 에스타페타가를 지나 투우장까지 825m의 좁은 거리를 투우들과 함께 달립니다. 1924년 이래 15명의 사망자와 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축제는 또한 헤밍웨이가 1926년에 출간한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에 나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라 리오하 지방의 포도주 이야기

스페인에서 포도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업자들이 자신들의 포도밭을 쉽쓸고 지나간 필록세라를 피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와 포도 재배를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 포도는 질병에 강해졌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라리오하 포도밭

라리오하 포도밭 순례자 ⓒ길벗

포도주가 나오는 샘

에스테야를 지나 3km를 가면 재미있는 수도꼭지 두 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푸엔테 데 이라체 (Fuente de Irache:이라체 샘)입니다. 수도꼭지 한 곳에는 물이 나오고, 다른 한 곳에서는 포도주가 나옵니다. 이라체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었던 전통을 이은 것입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있습니다. “순례자여! 산티아고까지 힘차게 가려면, 이 포도주 샘에서 한 잔을 따라 행운을 위해서 건배하세요.” “과도하게 마시지 마세요. 기꺼이 당신을 대접하리다. 다만 포도주를 가져가시려면 구입하세요.”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의 전설

14세기에 독일에서 온 젊은 순례자가 부모와 함께 순례 여행을 하다가 이곳의 한 숙소에 묵었습니다. 그런데 숙소 주인의 딸이 이 청년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녀는 이 청년에게 구애를 했지만 청년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훔친 은잔을 청년의 가방에 감추고 이를 신고했습니다. 청년의 가방에서 은잔이 발견되자 청년은 절도죄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슬픔에 잠긴 부모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산티아고까지 순례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순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수대에 다시 들렀는데, 아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경고의 의미로 처형한 사람의 시신을 교수대에 그대로 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에 부모는 즉시 지방 재판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닭고기를 먹고 있던 그가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 식탁의 닭들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빈정거렸습니다. 바로 그 때 식탁의 닭들이 접시에서 뛰쳐나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지방 재판관은 즉시 교수대에서 그 아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성당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성당 ⓒ길벗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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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가장 긴 다리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13세기에 만들어진, 20개 아치가 있는 카미노에서 가장 긴 이 다리에는 중세 기사(騎士)의 실연(失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434년에 레온 출신의 기사 돈 수에로 데 키뇬네스(Don Seuro de Quinones)는 한 여인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에 돈 수에로는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로 목둘레에 쇠로 만든 깃을 달고, 이 다리를 지나는 유럽 최고의 기사들에게 다리 위에서 마상 창 시함을 하자는 도전장을 냈습니다. 돈 수에로는 9명의 동료들과 함께 성년聖年)인 1434년에 산티아고의 날인 7월 25일 전후에 한 달 동안 이 다리를 지나는 기사들과 결투했습니다. 그는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깃을 지켰습니다. 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 승리로 인해서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돈 수에로는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 이 마상 창 시합은 매년 6월초에 다리 옆에서 재현됩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다리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다리 ⓒ길벗

케이마다 (Queimada)의식

케이마다는 오루호(orujo: 포도 껍질로 만든 갈리시아 지방의 독한 술),백설탕, 레몬껍질, 시너몬, 커피콩 등으로 만든 알콜 음료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을 즈음인 1세기~12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던 이 의식은 사람들 속에 있는 악력을 쫓아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어두운 방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케이마다가 만들어지는 용기(容器) 주변에 둘어앉아 이 의식을 행합니다. 이 술을 만드는 동안 사람들에게 특별한 힘을 전달하기 위해서 주문(呪文)을 외우면서 케이마다를 국자에 담아 불을 붙이고 이를 다시 용기에 천천히 따르면서 의식을 끝냅니다. 비아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있는 알베르게 아베 페닉스(Ave Fenix)의 오스피탈레로인 헤수스 하또(Jesus Jato)는 순례자들에게 자주 이 케이마다 의식을 행합니다.

케이마다

케이마다

산 홀리안 전설

산 홀리안(San Xulian)은 나룻배 사공, 여관 주인, 서커스 단원의 수호 성인입니다. 그는 성인의 삶보다 그리스 비극 읽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훌리안(Xulian)은 사냥을 나가서 사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사슴은 훌리안에게 “훌리안, 당신을 부모를 죽일 거예요.”라고 경고했습니다. 훌리안은 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유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훌리안의 행방을 알게 된 부모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훌리안은 외출을 하고 없었습니다. 훌리안의 부인은 지친 그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끔 자신의 침대를 제공했습니다.. 훌리안이 돌아왔을 때, 훌리안은 자신의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부인과 그의 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노한 풀리안은 자신의 칼로 함께 누워 있는 부모를 주경ㅆ습니다. 훌리안은 자신의 손으로 부모를 죽인 일에 대해서 깊이 상심하고 자책했습니다. 훌리안과 그의 부인은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습니다. 순례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이들 부부는 순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가난한 여행자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세우고 죽는 날까지 그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씻는 곳 라바코야(Lavacolla)

라바코야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티아고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몸을 씻는 곳이었습니다. 요즘의 순례자들에 비해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거의 씻지 않았기 때문에 냄새가 더 심했습니다. 그들은 순례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라바코야 강에서 씻었습니다. 이 의식은 17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코덱스 칼리스티누스의 저자인 에메릭 피코는 이곳을 라바멘툴라(Lavementula)라고 불렀습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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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부르고스와 메세타 지역 소개

카미노에는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카미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볼거리이자 이야깃거리입니다.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부르고스(Burgos)

884년에 도시의 형태가 갖춰진 부르고스는 1037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고, 국토 재정복(Reconquista)이 완료되었던 1492년 까지는 카스티야 이 레온 (Castilla y Leon) 연합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16세기에는 부르고스가 양모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중앙 정부가 마드리드로 옯겨간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 기간 동안에는 이곳이 프랑코 측의 본거지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 동안 부르고스의 이미지를 보수적인 가톨릭주의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 세운 직물, 화학, 고무공장 덕분에 부르고스는 오늘날 스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 도시가 되었습니다.

부르고스 대성당 카미노

부르고스 대성당 ⓒ길벗

스페인 중부의 고원 지대 메세타 지역

‘메사(mesa)’는 ‘책상(테이블)’을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책상은 우리가 딛고 있는 평지보다 높으면서도 평탄합니다. ‘메세타(meseta)’는 바로 ‘테이블’을 뜻하는 ‘mesa’에서 나온 말입니다. 메세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600~700m)평단한 지역 (‘고위 평탄면’이라고 합니다. ) 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스페인 전체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600m이상의 스페인 중부의 고원 지대에 해당됩니다. 대부분 나무가 없고 밀밭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름에는 메세타의 끝자락에 있는 칸타브리아 산맥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막고 더운 열기는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매우 덥습니다. 반면에 겨울에는 눈 덮인 산맥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하고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서 매우 춥습니다.

메세타 지역

메세타 지역 ⓒ길벗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도시 레온

서기 68년에 로마인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금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제7군단의 주둔지였던 레온은 3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지방의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레온(Leon)’이란 이름은 라틴어의 ‘군단’을 의미하는 ‘레지오(Legio)’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후 레온은 서고트족의 치하에 있다가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Ordono Ⅱ)가 수도를 오베이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도시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996년에는 알만수르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들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알폰소 5세(999~1027년)가 도시를 재건하여 레온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한편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부르고스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1230년에 두 왕국은 합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온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레온은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철광석과 석탄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레온의 인구는 2010년 현재 약 14만명이며,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Tip 레온 대성당 (Catedral)

레온 대성당은 1205년에 고딕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과 잇따른 붕괴로 인해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습니다. 레온 대성당의 벽에는 돌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더 많아서 ‘빛과 돌의 기적’으로 불립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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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올레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탄생

카미노

카미노 ⓒ길벗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팔공산 올레길, 북한산 올레길, 양양 구룡령길, 강릉 바우길… 온통 길, 길, 길 이야기뿐입니다.

가히 걷기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걷기 열풍은 제주도 올레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올레길이 바로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걸었던 제주도 출신의 언론인인 서명숙 씨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그분은 2006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자신의 고향땅에 올레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걷기 열풍의 ‘진앙지’인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어떤 곳인지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 대성당 ⓒ길벗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에서 카미노(Camino)는 ‘길’. de는 ‘~의’, 산티아고(Santiago)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인 야곱(야고보)’을 말하는 스페인어 이름입니다. 따라서, ‘산티아고(야곱)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곱(산티아고)은 서기 44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돌로 만든 배에 싣고 바다에 띄웠는데, 그 배가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아고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바로 이 지방에 있으며, 이 도시의 대성당에 산티아고의 유해가 묻혀 있습니다. 서기 950년 무렵부터 유럽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참배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순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례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길이 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입니다. 거의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길입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길은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했고, 1987년 파울로 코엘류가 <<순례자>>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은 여러 개입니다.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이곳에는 사도 야곱(산티아고)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카미노)은 여러 개입니다. 프랑스 길을 비롯해서 포르투갈 길, 은(銀)의 길, 북부 길, 해안 길, 마드리드 길, 레반테 길, 영국 길, 파리 길, 르퓌 길, 아를르 길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 길입니다. 이 길은 프랑스의 생장피 드포르(St. jean Pied -de-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약 800km에 달하는 길로, 스페인의 17개의 자치주 중에서 4개의 자치주(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 갈리시아)를 지납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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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음식문화

프랑스를 이야기할 때, 단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입니다. 최상의 요리로 칭송받는 ‘프랑스 요리’, 그러나 막상 떠오르는 요리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달팽이 요리, 거위간 요리, 와인 먹은 닭(꼬꼬 뱅) 정도로, 들어는 봤지만 먹어본 적은 없는 요리가 ‘프랑스 요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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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이 가져온 변화

최고급 식당에나 가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프랑스 요리, 이는 지금의 우리뿐 아니라 과거 프랑스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프랑스 요리가 서민들 가까이로 다가올 수 있게된 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을 내걸었던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그 이념이 요리에서도 실현되었던 거죠. 혁명으로 귀족사회가 붕괴되고 귀족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자 이들의 개인 요리사들은 생계를 위해 그동안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위대한 요리’를 내걸고 시내에 자신들의 음식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음식점을 뜻하는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말도 이때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토랑의 어원은 restaurer(부흥하다, 기력을 회복시키다)라는 프랑스어 동사로, 당시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절찬리에 판매되었던 ‘원기를 회복시키는 restaurative 수프를 파는 곳’의 명칭이 변해서 오늘날의 restaurant 이 되었고, 그 후 음식물을 제공하는 가게를 통칭하게 되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

프랑스 식당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식가들의 바이블, <미슐랭 가이드>입니다. 타이어 회사로 유명한 미슐랭은 1900년 프랑스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과 식당에 관한 안내 가이드를 처음 선보였는데 여기서 프랑스 전 지역 음식점을 소개하면서 맛과 서비스에 따라 별점을 부여했습니다. 세 개가 만점으로 만점을 받은 요리사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며, 그 레스토랑은 몇 년이나 앞서서 예약을 해야만 하는 곳이 됩니다. 매해 실시되는 이 평가에서 강등이 되기도 하는데, 한 요리사가 평강에서 강등되자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발행되고110년 넘는 기간 동안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로 미식가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 명실상부한 프랑스 식당 안내 바이블입니다.

프랑스의 식당

1. 레스토랑restaurant

프랑스의 레스토랑하면 왠지 ‘고급 요리’만 먹어야 하는 식당 같지만, 실상 고급 레스토랑에서부터 대중적인 레스토랑까지 여러 급이 있고 가정요리, 정통 프랑스 요리, 누벨뀌진느(새로운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레스토랑은 예약과 정장이 필수인데, 예약은 일주일 전쯤, 늦어도 2~3일 전에는 해야 합니다.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은 대체로 12:00~15:00, 19:00~23:00으로 그 외의 시간에는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입구에 메뉴판이 있습니다. 그중 오늘의 요리 Plat du jour는 가격도 저렴하면서 주문하기에도 편합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마음대로 자리에 앉지 마시고, 입구에 서 있으면 예약 여부를 묻고 나서 자리로 안내합니다. 자리에 앉으면 웨이터가 메뉴를 들고 옵니다.

2. 비스트로bi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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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레스토랑 외에도 규모가 작은 대중적인 음식점으로 비스트로가 있습니다. 가장 서민적인 파리의 모습과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마실 것이 제공되고 출근 전에 아침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3. 브라스리brasserie

또 다른 음식점 종류로는 브라스리가 있는데, 비스트로보다는 규모가 큰 곳으로 맥주홀을 의미하는 이름이지만, 실상은 대중적인 음식점입니다.

 

4.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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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상징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문학, 철학, 예술의 토론장이기도 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만나면서 큐비즘이라는 미술의 장르를 탄생시킨 곳도 바로 파리 시내 생 제르맹 데 프레 지역의 카페 ‘두 마고’이며, 바로 옆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에서는 계약 결혼으로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매일 저녁 글도 쓰고 토론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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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살롱 드 떼

일종의 찻집으로, 분위기는 카페보다 훨씬 우아하며 조용하고 안락합니다. 홍차와 비스켓, 케이크 등을 곁들여 먹을 수 있습니다. 지성과 예술을 꽃피운 프랑스 카페의 전통은 ‘철학 카페’로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카페에서도 지성만 먹는 것이 아니라 커피, 주스, 맥주와 크루아상, 샌드위치, 오믈렛 등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동네 작은 cafe.

6. 카페테리아

카페테리아는 셀프 서비스 형태의 식당으로, 좋아하는 요리를 자유롭게 선택한 후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면 됩니다. 프랑스어가 서툴 때는 일단 말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합니다.

7. 대학식당 RU (Restaurant Universitaire)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학생증을 소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식당입니다.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구내식당이 아니라, 국가 보조를 받아서 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정식요리(각종 고기 요리, 피자 스파게티류, 소시지 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과일 하나, 치즈 또는 요구르트 하나를 선택한 후 바게트 빵과 함께 먹으면 됩니다.

 

※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
이명은 지음
프랑스어 발음부터 회화까지 한번에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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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소개 – 아비뇽, 마르세유,니스

아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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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리옹역에서 출발한 TGV 열차가 프로방스로 들어서면서 만나는 첫 번째 도시가 ‘아비뇽 국제 연극제’로 유명한 도시, 아비뇽입니다. 하지만 ‘아비뇽의 유수’를 생각하지 않고 아비뇽을 지나갈 수는 없겠죠. ‘아비뇽 유수’는 프랑스 왕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린 로마 교황청이 1309년 통째로 옮겨와 68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사건입니다. 그 기간 동안 아비뇽에서는 7명의 교황이 즉위했었고, 교황청과 함께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와 예술가, 건축가들이 함께 와서 예술작품과 저술활동을 하면서 아비뇽에 문화예술이 꽃피게 됩니다.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비뇽의 북쪽에 위치한 교황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비뇽에 가면 또 하나 꼭 봐야 할 것이 코튼 뒤론 지역의 첫 포도 수확 축제와 아비뇽 다리입니다. 햇살 좋은 코트 뒤론 지역의 포도주는 보르도, 부르고뉴 포도주와 함께 많은 이들이 좋아합니다. 흔히 보르도 와인을 강한 남성에 비유하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코트 뒤론 포도주를 여성에 비교합니다. 프랑스의 아이들이라면 모두 배우는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동요에 나오는 아비뇽 다리는 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밖에 있는데, 본래 이름은 생 베네제 다리입니다. 12세기 경,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혼자서 돌로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17세기 말 론 강의 홍수로 인해 절반가량이 떠내려 가고 지금은 그 근처에 4개의 교각과 생 니콜라 예배당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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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를 좀 더 느껴보고 싶다면, 소르그 강 인근에 서는 벼룩시장이나 전통시장에 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침이면 신선한 채소와 바게트를 구하러 나온 동네 주민들과 시장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데, 이곳에서는 지역 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가지, 호박, 피망, 감자 등의 싱싱한 채소, 올리브, 꿀, 누가와, 라벤더 그리고 장신구, 각종 생필품 등 프로방스의 생활을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르세유, 2600년 역사의 항구

프랑스 최고, 최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는 이국적 세계,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항구에 촘촘히 정박해 있는 호화요트 군단과 옛 부두의 해산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참치, 각종 신선한 해산물들은 이 곳이 지중해의 중심 항구임을 은연중 말해줍니다.

마르세유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이프 섬에 갈 수 있습니다. 이곳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배경이 된 곳으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갇혀 있던 섬입니다. 이프 섬의 성은 마르세유 항구를 스페인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군사 요새였지만 나중에는 실제로 수많은 정치범과 기독교인들이 수감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르세유 항구를 볼 수 있는 방향에 있는 감옥 방은 지체 높은 수감자에게 배정되고, 창 하나 없어 볕이 들지 않는 곳은 힘없고 돈 없는 수감자들 차지였다고 합니다.

니스(Nice), 해변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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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니스는 칸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Cannes)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코트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입니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면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풍경은 당장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만큼 아름답고 이곳에서 만나는 지중해의 푸르름은 말그대로 ‘쪽빛’입니다. 아쥐르(Azur)는 프랑스어로 ‘진한 푸른색, 쪽빛’을 뜻하는 말입니다.

쪽빛 리비에라 해변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 호텔들과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프로므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 온갖 색의 파라솔과 비치데크들, 밤늦도록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눈요기거리가 됩니다. 산책로 끝에서 만나는 마세나 광장에서는 음악 공연과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돈을 받으면 조금씩 움직여 살아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진짜 같은 길거리 사람 동상들도 볼 수 있습니다.

기차여행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니스 역에서 지중해를 따라 이탈리아 방향이나 마르세유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도 좋습니다. 마르세유 방향의 기차는 니스에서 출발하면 칸, 틀롱, 마르세유를 거쳐 아를과 아비뇽을 지나게 됩니다.쉬지 않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철로변 풍경은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프로방스를 충분히 느끼게 할 만큼 다양하며, 생동감이 넘칩니다.

※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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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매력과 역사 소개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바다와 산지, 평야 지역 등 다양한 자연환경과 함께, 각 지역마다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프로방스 지방은 로마제국의 흔적부터 수많은 역사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닿고 동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을 접하고 있어 독특한 지방색을 자랑합니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남서지방에 해당하는데, 서쪽으로는 론 강의 좌안 안쪽부터 동쪽으로는 이탈리아와의 국경까지의 지역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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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프로방스의 라벤더 들판, http://en.wikipedia.org/wiki/File:Lavender_field.jpg)

매년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칸 영화제가 열리는 칸, 해변 도시 니스,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도시 마르세유, 유명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여름 바캉스를 지내는 휴양지 생 트로페즈, 교황이 프랑스 왕의 권위에 눌려 지내던 아비뇽 등 매력 넘치는 도시를 아우르는 곳이 프로방스 지역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지중해성의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문화적 자산들 때문에 프랑스 자국민들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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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프로방스라는 명칭은 로마제국 시대에 이 지역을 프로빈키아라고 부른데서 유래하지만,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 도시 마르세유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식민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피핀 왕 시기에 프랑크 왕국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중세에는 아라비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가 실제적으로 끝난 후에도 프로방스는 영주와 왕들의 이해관계와 결혼에 따라 이리저리 편입되는 운명을 겪습니다. 12세기에는 프로방스 백작령이 되었다가, 1481년에 와서야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왕령이 됩니다. 중세 프로방스 지역에서 쓰던 프로방스어는 음유시인 트루바두르들에 의해 연애를 주제로 한 서정시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십자군 원정 이후에는 급격히 쇠퇴하여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프로방스 지역은 1274년부터, 아비뇽은 1348년부터 1791년 프랑스에 다시 귀속되기까지 교황령이었습니다. 프랑스 왕령이 된 이후에도 17세기 전반까지는 지방 3부회가 강해서, 상당한 자치권을 누렸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마르세유에서 올라오던 의용군들이 부른 노래는 훗날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되었습니다.

예술적 영감의 장소,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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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한 프로방스의 풍경은 우리나라 시골의 여름 풍경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것은 마르세유 출신 작가 마르셀 파뇰의 작품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작품들이 들려주는 ‘고향’이야기는 프로방스의 숨겨진 얼굴을 보여주는 비밀의 열쇠가 됩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4부작 <아버지의 영광>, <어머니의 성>, <비밀의 시간>, <사랑의 시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연극으로도 유명한데 그중 처음 두 작품은 <마르셀의 여름>과 <마르셀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마농의 샘>도 영화와 소설로 만날 수 있을 만큼 파뇰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입니다.

프로방스는 전 서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상파 화가인 모네, 마네, 세잔, 고갱 등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국적 세계인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 마르세유 항구, 강렬히 빛나는 태양 아래 향기를 뿜어내는 라벤더와 흐드러지게 벌판을 덮고 있는 해바라기, 차가운 겨울 바람, 미스트랄이 간간히 불어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등 화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가득합니다.

※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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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지역 퐁피두센터 물랭루즈 소개

오페라 가르니에 지역

오페라 가르니에, 코메디 프랑세즈, 올랭피아 극장, 오페라 코믹 하우스가 모여 있어 고급 문화의 향유지인 동시에, 갤러리 라파에트, 프렝땅 등 최대의 백화점과 유명한 카페, 보석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역은 파리에서 가장 비싸면서도 화려한 곳입니다.

오페라 가르니에

오페라 가르니에, 사진출처 : www.flickr.com/photos/kaptah/3820984953/

오페라 가르니에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 가르니에는 1875년 건축가 가르니에에 의해 완공된 건물로, <오페라 유령>의 배경이 되기도 한 장소입니다. 지금은 발레만 공연하고 오페라는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합니다. 공연이 없는 낮에는 내부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에 동화 속 궁전 같은 아름다운 건물 외관과 더불어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건물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특히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다발>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독일의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건물로 유명한데, 1940년 프랑스와 휴전협정을 체결한 다음날 파리 시내를 방문한 히틀러는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파리를 방문하는 것이 내 평생의 꿈이었는데 그 꿈이 실현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1987년에는 마리아 칼라스 서거 10주년을 기념해 조수미 씨가 이곳에서 공연을 했는데, 당시 지휘자였던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고 일약 세계 음악계의 유명인사가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페라 거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오페라 거리인데, 이곳은 19세기 후반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 남작의 근대화 도로계획 가운데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가스 가로등이 켜진 아름다운 거리입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은행,항공회사,여행사들이 모여 있으며 면세점과 공항 가는 버스의 정류장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이 길의 막다른 지점인 두 개의 분수가 있는 광장에 팔레 루아얄(Palais Royal)과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ncaise)가 있습니다.

레알 지구

레알(Les Halles)은 원래 파리 중앙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추억>에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태어나는 파리의 중앙시장이 바로 이곳입니다. 중앙시장이 파리 교외의 랑지스로 이전되면서 한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다가,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퐁피두 대통령에 의해 1977년 퐁피두센터 설립이 추진되었고, 현재는 문화,예술의 광장뿐 아니라, 파리 최대의 사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레알 지구는 좀체 변하지 않는 파리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이루어진 곳이며, 파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퐁피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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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는 파리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20세기 시각예술을 위한 현대미술관과 더불어 각종 기능을 두루 갖춘 복합 문화예술센터입니다. 퐁피두센터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전에는 파리의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던 국가 소유의 현대 미술품들을 한곳에 모아 상설 전시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적인 주제로 특별기획 전시회도 자주 열립니다. 그 밖에 최첨단 시설의 대규모 공공도서관, 산업 디자인 센터, 영화박물관, 음향음악연구소, 각종 전시실, 회의장 등이 있고 비디오 예술이라는 하나의 미술 유파를 창시한 백남준 화백의 작품도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뽑힌 외국인 그룹의 설계에 의해 건축된 퐁피두센터 건물은 아직도 공사 중인 듯한 모습인데, 마치 거물의 안과 밖이 바뀐 듯한 구조입니다. 건물 내부의 모든 것, 즉 에스컬레이터, 환기구, 수도관, 전기관 등이 외부로 노출되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깨는 전위적인 모습 때문에 한때는 파리 시민들의 비판이 많았으나, 지금은 훌륭한 랜드 마크로 파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센터 앞 광장에서는 사시사철 예술가들이 각양각색의 공연을 펼치니 그것도 놓치지 마세요.

몽마르트르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에 있는 몽마르트르는 Mont(산, 언덕)과 Martre(순교자)의 합성어로,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 초까지 풍차가 돌아가는 시골 마을이었던 이 지역은 1860년 오스만 남작이 파리 시장이 된 이후 파리 시내로 편입되었으나 석회 광산이 있고 포도주에 대한 주세를 내지 않던 곳이라서 가난한 광부, 공사판 인부, 그리고 피카소, 반 고흐, 로트렉 등의 돈 없는 화가들이 모여서 싼 포도주를 마시며 그림에 열정을 바치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예술인 마을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년 10월이면 몽마르트르 언덕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시음하면서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사크레쾨르

샤크레쾨르

샤크레쾨르 ⓒ길벗

흔히 몽마르트 언덕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중심은 사크레쾨르 성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잔틴 양식의 하얀 세 개의 돔이 눈부시게 빛나 주변 어디에서나 잘 보입니다. 프러시아 전쟁의 패배와 파리코뮌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파리 시민들에게 정신적인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파리에서 제일 높은 이곳에 성당을 짓기로 하고 모금 운동을 통해 1876년부터 지어 1919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하얀 대리석의 성당도 아름답지만 이 성당 앞 계단에서 바라보는 파리 조망이 훌륭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테르트르 광장

성당 근처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은 작은 바둑판문의의 돌이 깔린 풍물광장으로, 거리의 화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는 곳입니다. 광장에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라팽 아질(Lapin Agile)이라는 예쁜 집이 나오는데, 이곳은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의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즐겨 찾아 술잔을 기울이며 토론하던 샹송 라이브 클럽입니다. 프랑스어로 라팽은 ‘토끼’ 아질은 ‘민첩한’이라는 뜻입니다. 현대 풍자 만화가 ‘앙드레 질’의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물랭루즈

물랭루즈

물랭루즈 ⓒ 길벗

언덕 밑에 있는 삐갈(Pigale) 거리의 물랭루즈는 붉은 풍차와 캉캉춤으로 유명한 카바레로 지금도 유럽에서 무희들의 의상과 연출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또 다른 명소로, 현재는 레스토랑인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도 당시에는 유명한 무도회장이었고,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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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에서 샹젤리제까지 루브르까지 미리 가보기

미리 보는 프랑스 – 개선문에서 루브르까지

개선문에서 출발해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거리가 샹젤리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자랑하는 곳입니다. 또한 콩코드 광장 뒤의 튈르리 정원을 가로지르면 루브르 박물관에 이르게 됩니다. 이 지역은 파리에서도 화려함을 뽐내는 곳일 뿐 아니라, 거리의 역사적 건축물들에서 배어 나오는 우아함과 현재 사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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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관광은 보통 샤를 드골 에뜨왈 역에서 시작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광장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건물이 보입니다. 이것이 개선문입니다.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 군대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양쪽 기둥에는 나폴레옹 군대의 승전도가 새겨져 있으며, 바닥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무명용사들을 기념하는 영원의 불꽃이 있습니다. 1921년 이래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이지만 딱 한 번 꺼진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던 1998년, 6월 30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패한 멕시코의 한 열성팬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곳에 맥주를 부어 꺼뜨린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샹젤리제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방사형으로 뻗은 길들이 마치 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에뜨왈(프랑스어로 별)’이라고 불리는 이 광장에서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 바로 샹젤리제입니다. 샹젤리제는 19세기 후반 이곳에 파리의 부호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의 세련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레스토랑과 명품 브랜드,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거리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모파상과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면서 신화적인 이미지까지 덧입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활기찬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는 망중한의 여유도 가져볼 만합니다.

엘리제궁과 그랑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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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에서부터 루브르 방향으로 샹젤리제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인 엘리제궁이 있고, 왼쪽으로 그랑팔레와 그 옆으로 프티팔레가 나옵니다. 이 두 건물은 에펠탑과 함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되었는데 이름 그대로 하나는 큰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현재는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화려한 모습보다는 봄여름으로는 신록이 아름다운, 가을에는 낙엽이 뒹구는 산책로가 나타납니다. 샹젤리제 거리의 끝에 위치한 콩코드 광장은 원래 ‘루이 15세 광장’이었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혁명광장’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또한 루이 16세, 마리 앙투와네트,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 수많은 사람들이 기요틴으로 쳐형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1890년 7월 혁명 이후에 ‘화합’을 뜻하는 이름인 ‘콩코드 광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습니다. 무게가 200톤을 훌쩍 넘는 이 거대한 기둥을 운송하는 데 무려5년이나 걸려 1836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기둥 하단 부분에는 당시의 수송 과정, 배로 옮기는 장면 등이 금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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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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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

센 강 중심에서 좌안을 거닐며. 에펠탑에서 오르세까지

미리보는 프랑스 : 센 강 중심에서 좌안을 거닐며③

에펠탑(Tour Eiffel)

에펠탑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장의 주 출입문으로 활용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세운 야심작이었습니다. 공모에 당선된 것은 귀스타프 에펠의 ‘철탑’으로 현재 이 건축물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펠탑 건립이 공표되었을 당시 모파상, 뒤마, 구노 등 문화예술계 300여 명이 에펠탑은 ‘격자의 흉측한 철탑’, ‘끔찍스런 새장’, ‘망루의 해골’이라 부르며 반대 성명을 내었고, 파리의 석조 건물과 어울리지 않으며 파리의 스카이라인과도 맞지 않는 비예술적이고 몰상식한 계획이라고 온갖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샹젤리제의 개선문과 함께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1년 365일 관광객들로 붐비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여름 성수기에는 거의 2~3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에펠탑은 파리 어느 곳에서나 감상할 수 있지만, 특히 샤이요궁(Palais de Chaillot)의 중앙계단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최고로 꼽습니다. 탁 트여 있어서,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거든요. 물론 에펠탑 부근 가까이에서 조망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앵발리드(Hotel des Invalides)

앵발리드

에펠탑에서부터 연결되어 길게 뻗은 공원인 샹드마르스를 지나면 나폴레옹이 졸업했다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가 나오고, 그 앞을 왼쪽으로 돌아나가면 앵발리드의 황금빛 돔이 보입니다. 원래 루이 14세가 전쟁 중 부상당한 군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한 병원이었지만, 지금은 프랑스 군대의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무기와 군복 등이 진열된 군사박물관, 1,2차 세계대전 전쟁기념관, 모형지도 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으며, 특히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오르세(Musee d’orsay) 미술관

오르세미술관

앵발리드에서 센 강을 따라 좀 더 내려가면, 강 건너로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며 타원 모양의 높은 유리천장의 인상적인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건축물인 오르세 미술관에 이르게 됩니다. 원래 이곳은 1900년에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세워진 기차 역이었으나,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커다란 시계가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어 과거에 철도 역사로 이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르세미술관2

루브르 박물관에는 고전 회화 작품들이, 퐁피두센터에는 모던 아트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면, 이 둘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미술관이 바로 오르세입니다. 주로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의 회화, 조각, 건축, 장식, 사진, 영화 그래픽 예술 등에 관한 4000점 이상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사실주의, 인상파, 후기인상파들의 유명 작품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총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 전시된 주요 작품으로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기>, 마네의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식사>, 쿠르베의 <오르낭의 장례식>, 앵그르의 <샘>,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등이 있습니다. 2층에서는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과 20세기 초반 화가들의 작품을, 3층에서는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 고흐의<자화상>, 세잔의 <정물>, 드가의 <발레리나> 등의 작품을 감상해보세요. 또한 2층에는 센 강과 파리 시내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베란다와 카페도 있으니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 위 내용은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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