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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몰이 축제가 유명한 팜플로나

나바라 지방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로 ‘소몰이 축제’가 유명한 곳입니다. 소몰이 축제 (encierro라고 합니다)는 7월 6일부터 시작되는 산 페르민(San Fermin)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이는 투우 경기에 사용할 소들을 투우장으로 옮길 때 운반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시 인근의 소 우리에서 투우둘을 풀어서 투우장까지 몰고 가는 과정에서 생긴 축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산 페르민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8시 정각에 산토 도밍고 광장에서 산토 도밍고가와 에스타페타가를 지나 투우장까지 825m의 좁은 거리를 투우들과 함께 달립니다. 1924년 이래 15명의 사망자와 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축제는 또한 헤밍웨이가 1926년에 출간한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에 나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라 리오하 지방의 포도주 이야기

스페인에서 포도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업자들이 자신들의 포도밭을 쉽쓸고 지나간 필록세라를 피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와 포도 재배를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 포도는 질병에 강해졌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라리오하 포도밭

라리오하 포도밭 순례자 ⓒ길벗

포도주가 나오는 샘

에스테야를 지나 3km를 가면 재미있는 수도꼭지 두 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푸엔테 데 이라체 (Fuente de Irache:이라체 샘)입니다. 수도꼭지 한 곳에는 물이 나오고, 다른 한 곳에서는 포도주가 나옵니다. 이라체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었던 전통을 이은 것입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있습니다. “순례자여! 산티아고까지 힘차게 가려면, 이 포도주 샘에서 한 잔을 따라 행운을 위해서 건배하세요.” “과도하게 마시지 마세요. 기꺼이 당신을 대접하리다. 다만 포도주를 가져가시려면 구입하세요.”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의 전설

14세기에 독일에서 온 젊은 순례자가 부모와 함께 순례 여행을 하다가 이곳의 한 숙소에 묵었습니다. 그런데 숙소 주인의 딸이 이 청년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녀는 이 청년에게 구애를 했지만 청년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훔친 은잔을 청년의 가방에 감추고 이를 신고했습니다. 청년의 가방에서 은잔이 발견되자 청년은 절도죄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슬픔에 잠긴 부모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산티아고까지 순례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순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수대에 다시 들렀는데, 아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경고의 의미로 처형한 사람의 시신을 교수대에 그대로 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에 부모는 즉시 지방 재판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닭고기를 먹고 있던 그가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 식탁의 닭들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빈정거렸습니다. 바로 그 때 식탁의 닭들이 접시에서 뛰쳐나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지방 재판관은 즉시 교수대에서 그 아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성당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성당 ⓒ길벗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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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지음
스페인어 발음부터 회화와 기초문법까지 수록한 스페인어 첫걸음의 모든 것!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13세기에 만들어진, 20개 아치가 있는 카미노에서 가장 긴 이 다리에는 중세 기사(騎士)의 실연(失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434년에 레온 출신의 기사 돈 수에로 데 키뇬네스(Don Seuro de Quinones)는 한 여인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에 돈 수에로는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로 목둘레에 쇠로 만든 깃을 달고, 이 다리를 지나는 유럽 최고의 기사들에게 다리 위에서 마상 창 시함을 하자는 도전장을 냈습니다. 돈 수에로는 9명의 동료들과 함께 성년聖年)인 1434년에 산티아고의 날인 7월 25일 전후에 한 달 동안 이 다리를 지나는 기사들과 결투했습니다. 그는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깃을 지켰습니다. 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 승리로 인해서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돈 수에로는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 이 마상 창 시합은 매년 6월초에 다리 옆에서 재현됩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다리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다리 ⓒ길벗

케이마다 (Queimada)의식

케이마다는 오루호(orujo: 포도 껍질로 만든 갈리시아 지방의 독한 술),백설탕, 레몬껍질, 시너몬, 커피콩 등으로 만든 알콜 음료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을 즈음인 1세기~12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던 이 의식은 사람들 속에 있는 악력을 쫓아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어두운 방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케이마다가 만들어지는 용기(容器) 주변에 둘어앉아 이 의식을 행합니다. 이 술을 만드는 동안 사람들에게 특별한 힘을 전달하기 위해서 주문(呪文)을 외우면서 케이마다를 국자에 담아 불을 붙이고 이를 다시 용기에 천천히 따르면서 의식을 끝냅니다. 비아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있는 알베르게 아베 페닉스(Ave Fenix)의 오스피탈레로인 헤수스 하또(Jesus Jato)는 순례자들에게 자주 이 케이마다 의식을 행합니다.

케이마다

케이마다

산 홀리안 전설

산 홀리안(San Xulian)은 나룻배 사공, 여관 주인, 서커스 단원의 수호 성인입니다. 그는 성인의 삶보다 그리스 비극 읽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훌리안(Xulian)은 사냥을 나가서 사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사슴은 훌리안에게 “훌리안, 당신을 부모를 죽일 거예요.”라고 경고했습니다. 훌리안은 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유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훌리안의 행방을 알게 된 부모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훌리안은 외출을 하고 없었습니다. 훌리안의 부인은 지친 그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끔 자신의 침대를 제공했습니다.. 훌리안이 돌아왔을 때, 훌리안은 자신의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부인과 그의 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노한 풀리안은 자신의 칼로 함께 누워 있는 부모를 주경ㅆ습니다. 훌리안은 자신의 손으로 부모를 죽인 일에 대해서 깊이 상심하고 자책했습니다. 훌리안과 그의 부인은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습니다. 순례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이들 부부는 순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가난한 여행자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세우고 죽는 날까지 그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씻는 곳 라바코야(Lavacolla)

라바코야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티아고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몸을 씻는 곳이었습니다. 요즘의 순례자들에 비해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거의 씻지 않았기 때문에 냄새가 더 심했습니다. 그들은 순례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라바코야 강에서 씻었습니다. 이 의식은 17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코덱스 칼리스티누스의 저자인 에메릭 피코는 이곳을 라바멘툴라(Lavementula)라고 불렀습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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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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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에는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카미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볼거리이자 이야깃거리입니다.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부르고스(Burgos)

884년에 도시의 형태가 갖춰진 부르고스는 1037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고, 국토 재정복(Reconquista)이 완료되었던 1492년 까지는 카스티야 이 레온 (Castilla y Leon) 연합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16세기에는 부르고스가 양모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중앙 정부가 마드리드로 옯겨간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 기간 동안에는 이곳이 프랑코 측의 본거지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 동안 부르고스의 이미지를 보수적인 가톨릭주의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 세운 직물, 화학, 고무공장 덕분에 부르고스는 오늘날 스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 도시가 되었습니다.

부르고스 대성당 카미노

부르고스 대성당 ⓒ길벗

스페인 중부의 고원 지대 메세타 지역

‘메사(mesa)’는 ‘책상(테이블)’을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책상은 우리가 딛고 있는 평지보다 높으면서도 평탄합니다. ‘메세타(meseta)’는 바로 ‘테이블’을 뜻하는 ‘mesa’에서 나온 말입니다. 메세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600~700m)평단한 지역 (‘고위 평탄면’이라고 합니다. ) 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스페인 전체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600m이상의 스페인 중부의 고원 지대에 해당됩니다. 대부분 나무가 없고 밀밭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름에는 메세타의 끝자락에 있는 칸타브리아 산맥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막고 더운 열기는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매우 덥습니다. 반면에 겨울에는 눈 덮인 산맥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하고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서 매우 춥습니다.

메세타 지역

메세타 지역 ⓒ길벗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도시 레온

서기 68년에 로마인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금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제7군단의 주둔지였던 레온은 3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지방의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레온(Leon)’이란 이름은 라틴어의 ‘군단’을 의미하는 ‘레지오(Legio)’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후 레온은 서고트족의 치하에 있다가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Ordono Ⅱ)가 수도를 오베이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도시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996년에는 알만수르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들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알폰소 5세(999~1027년)가 도시를 재건하여 레온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한편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부르고스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1230년에 두 왕국은 합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온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레온은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철광석과 석탄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레온의 인구는 2010년 현재 약 14만명이며,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Tip 레온 대성당 (Catedral)

레온 대성당은 1205년에 고딕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과 잇따른 붕괴로 인해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습니다. 레온 대성당의 벽에는 돌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더 많아서 ‘빛과 돌의 기적’으로 불립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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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카미노 ⓒ길벗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팔공산 올레길, 북한산 올레길, 양양 구룡령길, 강릉 바우길… 온통 길, 길, 길 이야기뿐입니다.

가히 걷기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걷기 열풍은 제주도 올레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올레길이 바로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걸었던 제주도 출신의 언론인인 서명숙 씨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그분은 2006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자신의 고향땅에 올레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걷기 열풍의 ‘진앙지’인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어떤 곳인지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 대성당 ⓒ길벗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에서 카미노(Camino)는 ‘길’. de는 ‘~의’, 산티아고(Santiago)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인 야곱(야고보)’을 말하는 스페인어 이름입니다. 따라서, ‘산티아고(야곱)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곱(산티아고)은 서기 44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돌로 만든 배에 싣고 바다에 띄웠는데, 그 배가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아고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바로 이 지방에 있으며, 이 도시의 대성당에 산티아고의 유해가 묻혀 있습니다. 서기 950년 무렵부터 유럽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참배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순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례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길이 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입니다. 거의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길입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길은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했고, 1987년 파울로 코엘류가 <<순례자>>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은 여러 개입니다.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이곳에는 사도 야곱(산티아고)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카미노)은 여러 개입니다. 프랑스 길을 비롯해서 포르투갈 길, 은(銀)의 길, 북부 길, 해안 길, 마드리드 길, 레반테 길, 영국 길, 파리 길, 르퓌 길, 아를르 길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 길입니다. 이 길은 프랑스의 생장피 드포르(St. jean Pied -de-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약 800km에 달하는 길로, 스페인의 17개의 자치주 중에서 4개의 자치주(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 갈리시아)를 지납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 위 내용은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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